원래 정릉은 지금의 정동 근처에 있었지만 태종에 의해 현재 정릉동으로 옮겨졌어요. 태종은 신덕왕후의 신분을 왕비에서 후궁으로 격하시키고 도성 안에 묘를 둘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묘를 옮겼지요. 능은 버려지다시피 파헤쳐졌고 능의 석물(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들은 홍수가 난 광통교 복구에 사용되었으며, 그밖에 목재나 석재들은 중국에서 온 사신이 머무르는 숙소를 짓는 데 쓰게 했어요. 이렇게 홀대를 받던 정릉은 260여 년이 지난 1669년(현종 10년)에야 비로소 왕릉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어요.
이후 숙종이 인형왕후를 폐비시킨 것을 후회하고 다시 복위시켰고 중전 장씨는 다시 후궁으로 강등되었어요. 인현왕후를 저주하던 희빈의 행위가 발각되어 사약을 받게 되면서 경종은 어머니 희빈 장씨를 잃게 되죠.
경종은 살아있는 동안 원자의 지위를 위협받으며 온갖 풍파를 겪었어요. 허약하고 소심해진 경종은 오랫동안 병을 앓다가 결국 36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요.
선의왕후 어씨는 왕세자빈 심씨가 세상을 떠난 후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경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왕비가 되었어요. 경종이 세상을 떠나고 영조가 즉위한 후에는 경순왕대비가 되었으며, 1730년(영조 6년)에 경덕궁 어조당에서 26세로 세상을 떠났어요.
가장 세계적인, 가장 한국적인, 가장 나다운
원래 정릉은 지금의 정동 근처에 있었지만 태종에 의해 현재 정릉동으로 옮겨졌어요. 태종은 신덕왕후의 신분을 왕비에서 후궁으로 격하시키고 도성 안에 묘를 둘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묘를 옮겼지요. 능은 버려지다시피 파헤쳐졌고 능의 석물(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들은 홍수가 난 광통교 복구에 사용되었으며, 그밖에 목재나 석재들은 중국에서 온 사신이 머무르는 숙소를 짓는 데 쓰게 했어요. 이렇게 홀대를 받던 정릉은 260여 년이 지난 1669년(현종 10년)에야 비로소 왕릉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어요.
이후 숙종이 인형왕후를 폐비시킨 것을 후회하고 다시 복위시켰고 중전 장씨는 다시 후궁으로 강등되었어요. 인현왕후를 저주하던 희빈의 행위가 발각되어 사약을 받게 되면서 경종은 어머니 희빈 장씨를 잃게 되죠.
경종은 살아있는 동안 원자의 지위를 위협받으며 온갖 풍파를 겪었어요. 허약하고 소심해진 경종은 오랫동안 병을 앓다가 결국 36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요.
선의왕후 어씨는 왕세자빈 심씨가 세상을 떠난 후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경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왕비가 되었어요. 경종이 세상을 떠나고 영조가 즉위한 후에는 경순왕대비가 되었으며, 1730년(영조 6년)에 경덕궁 어조당에서 26세로 세상을 떠났어요.
조선을 건국하기 전 어느 날, 이성계는 말을 달리며 사냥을 하다가 목이 매우 말라 우물을 찾았다. 마침 우물가에 있던 여인에게 물을 청하였는데, 그녀는 바가지에 물을 뜨더니 버들잎을 띄워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성계가 버들잎을 띄운 이유를 묻자 여인은 “갈증이 심하여 급히 물을 마시다 체하지나 않을까 염려되어 그리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대답을 들은 태조는 그녀의 갸륵한 마음 씀씀이에 반하여 부인으로 맞아들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