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있는 선택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자유신문>. 1945년 12월 17일
이육사가 세상을 떠나기 전 감옥에서 쓴 시가 바로 유명한 〈광야〉예요.
이육사는 이 시를 짓고 ‘이육사’라는 필명을 사용했어요. 이 이름은 대구 형무소에 있을 때 붙여진 수인 번호 264의 음을 딴 것이에요. 이육사의 본명은 이원록이지요.
말
흐트러진 갈기
후줄근한 눈
밤송이 같은 털
오! 먼 길에 지친 말
채찍에 지친 말이여!
수굿한 목통
축 처―진 꼬리
서리에 번쩍이는 네 굽
오! 구름을 헤치려는 말
새해에 소리칠 흰말이여!
《조선일보》, 1930년 1월 3일
1939년 이육사는 가족들과 함께 성북구 종암동으로 거처를 옮겼어요. 오랜만에 가족과 모여 살게 되었지만, 이 시기 이육사의 마음은 편치 않았어요. 중일전쟁으로 인해 일본의 침략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우리나라가 병참 기지로 전락했고, 징용, 징발 등 일본의 폭력적인 지배가 극에 달하던 시기였기 때문이에요. 감시가 심해져 타국에서 독립운동을 펼칠 수도 없고 검열 때문에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발표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육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시를 쓰는 것뿐이었어요. 이때 이육사가 쓴 시는 바로 그 유명한 〈청포도〉예요.
내 고장 칠월(七月)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문장》, 1939년 8월
용기 있는 선택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자유신문>. 1945년 12월 17일
이육사가 세상을 떠나기 전 감옥에서 쓴 시가 바로 유명한 〈광야〉예요.
이육사는 이 시를 짓고 ‘이육사’라는 필명을 사용했어요. 이 이름은 대구 형무소에 있을 때 붙여진 수인 번호 264의 음을 딴 것이에요. 이육사의 본명은 이원록이지요.
말
흐트러진 갈기
후줄근한 눈
밤송이 같은 털
오! 먼 길에 지친 말
채찍에 지친 말이여!
수굿한 목통
축 처―진 꼬리
서리에 번쩍이는 네 굽
오! 구름을 헤치려는 말
새해에 소리칠 흰말이여!
《조선일보》, 1930년 1월 3일
1939년 이육사는 가족들과 함께 성북구 종암동으로 거처를 옮겼어요. 오랜만에 가족과 모여 살게 되었지만, 이 시기 이육사의 마음은 편치 않았어요. 중일전쟁으로 인해 일본의 침략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우리나라가 병참 기지로 전락했고, 징용, 징발 등 일본의 폭력적인 지배가 극에 달하던 시기였기 때문이에요. 감시가 심해져 타국에서 독립운동을 펼칠 수도 없고 검열 때문에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발표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육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시를 쓰는 것뿐이었어요. 이때 이육사가 쓴 시는 바로 그 유명한 〈청포도〉예요.
내 고장 칠월(七月)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문장》, 1939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