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사진은 지금부터 100여 년 전 즈음, 조선(대한제국) 시대의 서당 풍경이 담겨 있어요. 선생님과 학생들의 모습이 보이지요?
이들이 입은 옷을 주목해서 살펴보세요. 지금 우리가 입는 옷과는 많이 달라 보일 거예요. 이 옷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이 시대에는 지금과 달리 대규모 옷 공장이 없었기 때문에 목화, 누에 등을 키워서 직접 손으로 실을 만들고 그 실로 옷감을 짜서 옷을 만들었어요. 이렇게 옷 만드는 과정이 어렵고 힘드니, 옷이 아주 귀할 수밖에 없었지요.
다섯 이랑 밭에 여덟 식구가 딸린
처녀가 있네. 뽕따는 처녀가 있네.
처녀 나이 열여섯에 아낙네 일 부지런해
버드나무 그네 친구들과는 어울리질 않는다네.
십 리 벌 뽕밭에 봄볕이 따스한데
새벽에 깨니 벽창가에서 비둘기 소리가 들려오네.
부드러운 가지 너풀거려 머리채를 낮추고는
야르르 기름진 잎을 가느다란 손으로 따네.
가지 휘어잡고 잎을 따면 어느새 해가 높아
연기 같은 녹음 저 멀리 농막이 아득해라.
광주리를 채우다 보니 땀방울이 떨어지는데
따고 또 따서 마음대로 담는구나.
처녀는 얌전해서 그대로 봄빛이건만
사또는 무슨 심사로 어정거리나.
돌아오니 어머니가 많이 땄느냐 물으셔
흡족히 대답하고는 잠실로 들어갔네.
석잠 잔 누에가 고치를 짓자마자
명주 짜라는 독촉에 북소리가 울리네.
부질없이 고생하니 누에치는 처녀가 불쌍하구나
관청에 쌓인 비단 모두 네 손에서 나왔단다.
사적 선잠단지는 조선 시대에 제사를 지냈던 곳이에요. 1908년 조선의 국가 제사를 축소하고 선잠단의 신위를 사직단으로 옮기면서 선잠제는 중단되고 터만 남게 되었어요. 공터가 된 선잠단지는 1930년대 773평 가운데 528평을 개인에게 팔고 200여 평 만을 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1939년 보물로 지정합니다. 해방 이후 국유지가 된 이곳은 1961년 ‘선잠단지’라는 표지석을 세우고 2년 뒤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나 방치상태로 놓이게 되었어요. 그러다 1976년 지역 주민 이학수 씨의 주도로 뽕나무를 심고 가꾸기 시작하여, 1993년부터 성북구와 성북문화원이 주최하고 선잠제향보존위원회가 주관하는 선잠제향을 열었지요. 2016년에는 선잠단지 복원 사업을 위한 유적 정밀 발굴 조사를 통해 선잠단의 위치와 유구를 확인했어요. 지금의 선잠단지는 그것을 기초로 하여 재현된 것이지요.
한 벌의 옷이
만들어지기까지
위의 사진은 지금부터 100여 년 전 즈음, 조선(대한제국) 시대의 서당 풍경이 담겨 있어요. 선생님과 학생들의 모습이 보이지요?
이들이 입은 옷을 주목해서 살펴보세요. 지금 우리가 입는 옷과는 많이 달라 보일 거예요. 이 옷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이 시대에는 지금과 달리 대규모 옷 공장이 없었기 때문에 목화, 누에 등을 키워서 직접 손으로 실을 만들고 그 실로 옷감을 짜서 옷을 만들었어요. 이렇게 옷 만드는 과정이 어렵고 힘드니, 옷이 아주 귀할 수밖에 없었지요.
다섯 이랑 밭에 여덟 식구가 딸린
처녀가 있네. 뽕따는 처녀가 있네.
처녀 나이 열여섯에 아낙네 일 부지런해
버드나무 그네 친구들과는 어울리질 않는다네.
십 리 벌 뽕밭에 봄볕이 따스한데
새벽에 깨니 벽창가에서 비둘기 소리가 들려오네.
부드러운 가지 너풀거려 머리채를 낮추고는
야르르 기름진 잎을 가느다란 손으로 따네.
가지 휘어잡고 잎을 따면 어느새 해가 높아
연기 같은 녹음 저 멀리 농막이 아득해라.
광주리를 채우다 보니 땀방울이 떨어지는데
따고 또 따서 마음대로 담는구나.
처녀는 얌전해서 그대로 봄빛이건만
사또는 무슨 심사로 어정거리나.
돌아오니 어머니가 많이 땄느냐 물으셔
흡족히 대답하고는 잠실로 들어갔네.
석잠 잔 누에가 고치를 짓자마자
명주 짜라는 독촉에 북소리가 울리네.
부질없이 고생하니 누에치는 처녀가 불쌍하구나
관청에 쌓인 비단 모두 네 손에서 나왔단다.
사적 선잠단지는 조선 시대에 제사를 지냈던 곳이에요. 1908년 조선의 국가 제사를 축소하고 선잠단의 신위를 사직단으로 옮기면서 선잠제는 중단되고 터만 남게 되었어요. 공터가 된 선잠단지는 1930년대 773평 가운데 528평을 개인에게 팔고 200여 평 만을 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1939년 보물로 지정합니다. 해방 이후 국유지가 된 이곳은 1961년 ‘선잠단지’라는 표지석을 세우고 2년 뒤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나 방치상태로 놓이게 되었어요. 그러다 1976년 지역 주민 이학수 씨의 주도로 뽕나무를 심고 가꾸기 시작하여, 1993년부터 성북구와 성북문화원이 주최하고 선잠제향보존위원회가 주관하는 선잠제향을 열었지요. 2016년에는 선잠단지 복원 사업을 위한 유적 정밀 발굴 조사를 통해 선잠단의 위치와 유구를 확인했어요. 지금의 선잠단지는 그것을 기초로 하여 재현된 것이지요.
지금으로부터 5천 년 경 즈음, 중국의 황제 헌원의 아내인 서릉씨가 정원에서 차를 마시려던 순간, 찻잔 속에 우연히 누에고치 하나가 떨어졌다.
이때 황후 서릉씨는 누에고치가 뜨거운 찻물에 풀려 펴지면서 광택을 지닌 아주 질긴 실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이 순간, 지구 최고의 직물, 비단이 탄생했다. 이 현상을 발견한 서릉씨는 이후에 뽕잎을 먹여 누에 유충을 기르고 특수 방직기를 발명해 인류 최초의 양잠 기술자가 되었다.
성북선잠박물관은 선잠단지 근처에 있다.
박물관 외관은 씨실과 날실을 형상화한 모양으로, 이곳에서는 선잠단지의 역사와 선잠제, 누에와 비단 등 의복 문화에 관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